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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한반도의 멸종동물들 - 악어와 맥



1980년대 초, 필자가 중학생 시절 극장에서 본 영화들 중에 ‘엘리게이터’라는 괴물 악어 영화가 있었다. 애완용 새끼 악어가 하수도에 버려졌다가 어마어마한 크기로 자라서 도시를 휘젓고 다닌다는 줄거리였다. 악어가 그렇듯 커진 이유는 도시의 여러 오염 물질들로 인한 돌연변이적 성장이라고 처리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런 괴물 악어는 최근, 영화 ‘플래시드(1999)’ 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악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도 악어가 존재했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룡 연구의 권위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소의 이융남 박사는 지난 2002년 경남 하동에서 미지의 파충류 화석을 발견했었는데, 그동안 세밀한 복원 작업 끝에 이 화석이 이제까지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악어종임을 밝혀냈다. ‘하동수쿠스 아세르덴티스 (Hadongsuchus acerdentis)’로 명명된 이 악어는 지난 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2005 헤이얀 국제공룡심포지엄’에서 공식적으로 세계에 선을 보였다.오늘날 우리에게 악어는 동물원 아니면 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낯선 동물이다. 아프리카 나일강이나 미국 플로리다 습지 정도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그러나 악어의 분포지역은 사실상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호주에도 악어가 있고 심지어 중국 양쯔 강에도 악어가 산다. 따라서 한반도에도 악어가 살았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닌 것이다. 



악어의 직계 조상은 2억 2천만 년 전쯤에 처음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중생대에 전성기를 누리다가 완전히 멸종된 공룡들과는 달리 지금까지도 살아 남았다. 하동수쿠스는 1억2천만 년 전 정도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지며, 몸길이가 50cm 가량 되는 작은 종류였다고 한다. 



하동 악어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 땅에 또 얼마나 많은 동식물들이 살다가 사라졌을까 하는 것이다. 사실 하동 악어의 경우 원시 인간들이 등장하기 훨씬 전에 자연 도태로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겠지만, 비교적 최근까지 이 땅에 생존했었다고 믿어지는 다른 생물들은 다름 아닌 인간의 간섭 때문에 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맥’이라는 동물의 경우를 보자. 



서울과 성남, 의왕, 과천 등지에 걸쳐있는 청계산은 수도권의 시민들이 즐겨 찾는 등산로 중의 하나로 해발 600미터 정도의 높이이며 옥녀봉, 매봉, 망경대, 마왕굴 등의 포인트가 있다. 마왕굴은 고려가 망한 뒤 조견 선생이란 사람이 산 속에 은거하면서 이따금 들러 물을 마셨다는 곳이며, 아주 큰 바위가 있고 그 밑으로 동굴처럼 생긴 모양이 있지만 바위들이 잔뜩 모여 있어 그 안쪽에 정말 굴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이곳에 서 있는 안내문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고려가 망하기 직전 맥이라고 하는 이상하게 생긴 큰 짐승이 여러 산짐승들을 몰고 들어갔다는 곳, 일명 오막난이굴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맥’은 우리나라 옛날 역사에 종종 등장한다. 아득한 옛날 장백산에서 인간이 처음 났을 때부터 이 땅에 살던 신령한 짐승이라서 우리민족이 신수(神獸)로 숭상했다고 하며 그 때문에 우리 민족이 ‘맥족’, 또는 ‘예맥족’이라 불렸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동물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맥은 오늘날에도 실존하는 종이다. 코가 긴 돼지 모양의 이 동물은 중남아메리카와 아시아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데, 특히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 타이 등지에 있는 ‘말레이맥’은 고서에 묘사된 맥과 상당히 비슷한 모양이라고 한다. 



물론 옛날 이 땅에 살았다는 전설의 동물이 오늘날의 맥과 같은 종이라는 확증은 없다. 예를 들어 두꺼비를 ‘하마(蝦:두꺼비)’라는 한자어로 부른 것처럼 옛날에는 서로 다른 동물을 같은 발음으로 부른 기록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 한반도에서 또 다른 동물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바로 호랑이나 표범, 늑대 등이 그들이다. 이 동물들은 불과 40~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이 땅에 살고 있었지만, 이제 적어도 남한에서는 더 이상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1978년 지리산에서 발견된 이후 26년 만인 작년에 다시 강원도에서 사체가 발견된 여우처럼 멸종 위기 동물들이 아직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호랑이나 표범 등은 워낙 수렵의 희생물로 개체수가 줄었고 더 이상 흔적도 발견되지 않아서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생물의 종다양성(biodiversity)은 자연 생태가 얼마나 건강한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우리들은 이 땅의 후손들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주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글: 박상준 -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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