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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생존을 위한 킬러본능-단풍



“수레를 멈추고 석양에 비치는 단풍 섶에 앉아보니 서리 맞은 단풍잎이 한창 때 봄 꽃보다 더욱 붉구나.” 大시인 두보가 가을의 정취를 극찬한 시구이다. 두보의 시구를 빌리지 않아도 우리의 10월 가을 산은 말 그대로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그러나 단풍의 그 붉은 아름다움 속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종의 번식을 억제하는 킬러본능(?)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단풍이 감추고 있는 킬러본능은 무엇일까? 

단풍(丹楓)은 기후 변화에 의해 나뭇잎에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 녹색 잎이 붉게 변하는 현상을 말하며, 광위적으로 황색 및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까지도 포함한다. 단풍은 나무가 겨울나기를 위해 ‘낙엽 만들기’를 준비하면서 만들어지는데, 가을이 되면 나무는 나뭇잎으로 가는 물과 영양분을 차단하게 된다. 이 때문에 나뭇잎에 들어 있던 엽록소는 햇빛에 파괴되면서 양이 줄게 되고, 결국 나뭇잎의 녹색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대신 종전에는 녹색의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다른 색의 색소가 더 두드러져 나뭇잎이 다양한 색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색깔별로 살펴보면, 우선 붉은 단풍은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영양분(당)이 기온이 떨어지면서 이동이 느려지고 점차 붉은색의 안토시안 색소로 변해서 나타난다. 이 색소는 일교차가 클수록 잘 만들어지는데 가을 일교차가 클 때 단풍이 아름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밖에 황색 및 갈색 단풍은 각각 노란색의 카로틴 색소와 크산토필 색소에 의해 자신의 색을 띄게 된다. 



그런데, 최근 뉴욕 콜게이트 대학 연구진은 “단풍의 붉은색은 경쟁자를 제거하고 자신의 종족을 보전하기 위한 일종의 독이자 방어막이다.”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단풍 나무처럼 붉게 물든 나무들은 주변에 다른 종의 나무가 자라지 못하도록 독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다른 색의 단풍과는 달리 붉은 색의 단풍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단풍나무의 붉은 잎과 파란 잎, 너도밤나무의 노란 잎과 녹색 잎을 채취해 각각 상추 씨앗 위에 뿌려 발아 정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단풍 나무의 붉은 잎이 다른 색의 잎들에 비해 상추 씨의 발아율을 크게 감소시켰음을 밝혀냈다. 

즉, 붉은 단풍의 색소는 다른 성분이 파괴된 뒤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성하는 일종의 독이자 방어막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가을에 붉은 단풍잎이 떨어지면 안토시아닌(antocyanin)1) 성분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다른 수종의 생장을 막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토시아닌이 어떠한 방법으로 다른 수종의 생장을 막는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단풍의 그 화려한 아름다움 속에 이처럼 생존과 종족 보존을 위한 숨겨진 이면이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단풍이 화려하고 아름답다.”라는 말은 우리의 주관적인 감성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단풍을 볼 때면 아름답다는 말과 함께, 그들의 삶과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과학향기 편집부) 





주1) 꽃이나 과실 등에 포함되어 있는 안토시아니딘의 색소배당체(色素配當體:색소 글리코시드). 가수분해에 의하여 하나 또는 둘의 단당류(單糖類)와 아글리콘(非糖部)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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