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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은 영생교가 아니다?

최태민이 사이비교주인 것은 확실하나 어떤 교단의 교주냐를 두고 세간에서 이야기가 분분하다.

주로 영생교 1대 교주였다는 얘기가 많이 돌고 있어서

영생교 홈페이지를 가보니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전면 부인하고 있었다.




현 영생교 사태에 대하여

 

본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승리제단은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씨가 세운 영생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본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승리제단은 1981년 8월 18일 

조희성님에 의해 세워졌으며...(중략)




위와 같이 영생교는 부녀가 대를 이어 박근혜를 40여년간 농락해오며 부와 권력를 가졌던

최태민, 최순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영생교가 포교를 위해 만든 사이트에서도 아래와 같이

최태민이 1973년 5월 13일 대전일보에 냈던 광고문을 토대로

 최태민이 자신들과 다르다고 아래와 같이 얘기하고 있다.



(이하 영생교측 주장)

1973년 5월자 대전일보 4면 광고란에 실린 <영세계에서 알리는 말씀> 이란 제목의 광고에 의하면 영세계의 주인은 조물주이고 최태민은 조물주가 보낸 칙사이다. 불교에서의 깨침과 기독교에서의 성령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 이 모두를 조물주께서 주신 조화로서 즉각 실천시킨다는 칙사인 자신인 받은(?) 어명/천명(?)을 발표하는 자리에 참석하라는 광고이다.


발표 일시는 1973년 5월 13일 오후 4시 장소는 대전시 대흥동 ㅇㅇ예식장.

곁들여 모든 종교지도자들도 영세계 법칙을 전수받아 만민에게 참된 공헌을 하라는 권유와 동시에 현대의학으로 해결치 못하는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모든 재난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은 다 와서 상의하라는 내용이다.

연락처로 전화번호는 없고 최태민 칙사 자신의 임시숙소 였던 대전시 대사동 196번지 케블카에서 200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ㅇ나무집 (여관/여인숙으로 보임)


종교단체의 연락처가 없다는 것은 마땅한 예배당 조차 갖추지 못했었다고 보아지는 대목이다.


이후 1975년 4월 "영세교" 를 버리고 "대한구국선교회" 로 이름을 바꾸었다. 개명한 이름은 <대한민국 나라를 구하는 기독교 교회> 라는 뜻으로 정치색이 짙다. 최고 정치지도자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최태민은 일반 기독교 목사들과 그 신도들을 동원하여 야외 기도회를 개최한 것으로 보여진다.

단체의 명예총재와 총재가 당시 최고권력자인 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영애 근혜양(2016년 現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태민 자신의 종교 사역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대한구국선교회는 1976년 다른 단체와 규합하여 구국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구국봉사단 역시 1979년 다른 단체와 규합하여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새마음봉사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한 뒤 1980년 11월 22일 자진 해산하였다.

이상과 같이 최태민이 조직한 단체들의 행적과 일련의 이름변경으로 보아 최태민은 당시 최고권력자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하여 대통령의 영애(큰딸)에 접근하여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바탕으로 아버지인 대통령의 멘토로까지 성장하는데 종교를 이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에 힘을 실어 준다.

즉,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종교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시각이다.

최태민 목사라는 직함이 말해주듯 영세교의 교리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기독교의 한 부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종교단체 지도자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이유에서 단체의 이름은 바꿀 수 있을지언정 종교단체가 신앙하는 대상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종교단체라면.

그런데 종교색을 갖고 있던 단체이름이 최종적으로 봉사단으로 귀결되었고 단체의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고 조물주의 칙사에서 기독교 목사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또 무슨 조화일까!? 

(이상 영생교측 주장)




참고로 영생교 1대 교주라고 알려진 '조희성'에 대한 위키백과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위의 영생교측 입장에 따르면 최태민이 영생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최태민이 만든 종교는 '영세교'인가?


그것도 역시 아닌것 같다.


영생교측 주장에서와 같이 변변한 예배당 하나 없이 여관을 전전하던

 최태민은 교단이라고 할 만한 조직을 갖추지도 못한 떠돌이 사기꾼에 불과했던 것이다.



당시 정부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최태민은 박근혜를 만나기 전까지는

 단칸방에서 전화기도 없이 살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던 그가 육영수여사가 자신의 꿈에 나왔다며 박근혜에게 접근하고나서 부터는 즉시 부와 권세를 거머쥐게 된 것이 사실이다. 당시에도 경찰서장과 도지사를 불러 호통을 쳤다고 하니 그 위세가 대단했나보다.


그러니 최태민은 영생교가 아니다.

다만 영생교를 만든 조희성과 마찬가지로 최태민도 박태선에서 나와

박태선의 교리를 비슷한 방법으로 여러 종교를 짬뽕하였고 

박태선을 따르던 무리들을 규합했던 점을 볼 때엔 비슷한 면이 많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