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알리바바 생태계'를 고민하다! 중국의 중산층 혁명

­­ː 2015. 12. 8. 20:35

 알리바바가 연출한 '광군제(光棍節·솔로데이)' 얘기 다 아실 겁니다.  행사 당일(11일)에만 912억 위안(약 16조500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네요. 오늘 알리바바 얘기 다시 한 번 해보죠. 알리바바가 중국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우리에게는 어떤 것을 시사하는 지를 고민해보겠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자. 알리바바는 과연 혁신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IT기업이 우뚝 선 것은 '혁신(innovation)' 덕이다. 모두 상품이나 서비스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고, 인간의 삶을 바꾼 기업들이다. 그렇다면 알리바바는 무엇을 혁신했고, 또 어떤 삶을 바꿨는가?
 
없다. 알리바바의 메인 비즈니스 모델은 전자상거래다. 그 기법은 미국의 이베이나 아마존에서 배워왔다. 알리바바는 검색이나 메시지 등 일부 기능을 바이두(百度)나 텅쉰(騰迅.턴센트) 등에 의지하고 있다. 이들 바이두나 텅쉰의 기술 기술 역시 미국에서 배껴온 것일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알리바바는 혁신하고는 거리가 먼 기업이다. 한 마디로 '짝퉁'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세계는 알리바바에 환호하고 있다. 912억 위안(약 16조5000억 원)의 상품을 하루에 팔아치울 만큼의 저력을 갖고 있다. 왜 그런가?
 
'중국 특색의 혁신' 때문이다. 기술과 시장의 결합이 이 혁신의 핵심이다. 멕킨지는 이를 'Innovation through commercialization(시장화를 통한 혁신)'이라고 했다. 해외에서 개발된 기술을 중국 시장에 맞게 변형하는 것, 그게 바로 중국식 혁신이다. 물론 거대 시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해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하고, 혁신을 해도 중국 특색의 혁신을 한다.
 
알리바바가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淘寶)를 만든 건 2003년이었다. 당시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은 이베이가 잡고 있었다. 그러나 4년 만인 2007년 이베이는 짐을 싸야 했다. 타오바오에 밀렸기 때문이다. 그 4년 도대체 뭔 일이 벌어진걸까?
 
인터넷 전자상거래의 생명은 보안이다. 중국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배달 시스템도 중요했다. 그것 역시 어려운 과제다. 이베이는 이 문제 해결에 몰두했으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물러서야 했다. 알리바바의 해법은 지불시스템인 '알리페이'다. 기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베이의 페이팔(PayPal)에서 배워왔다. 그러나 알리페이는 페이팔과는 달랐다. 중국 사이버 거래의 가장 큰 문제점인 소비자와 제조업체의 불신의 골을 메웠다. 소비자가 완전 만족할 때라야 비로소 돈이 지불된다. 알리페이 덕택에 타오바오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다.
 
그들이 성공이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시장화를 통한 혁신' 말이다.

 

 

IT분야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맹렬하게 세계 시장으로 돌진하고 있는 고속철도를 보자.
 
중국이 가와사키(일본), 지멘스(독일), 알스톰(프랑스) 등으로부터 고속철도 기술을 들여오기 시작한 것은 2004년이었다. 그로부터 딱 6년 만인 2010년, 중국은 시속 380㎞로 내달릴 수 있는 세계 최고 속도급 고속철도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 세계 고속철도 제작 업계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해? 짝퉁아니야?'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했다.
 
가능하다. '시장화를 통한 혁신'이 있었기에 말이다. 중국정부는 지난 2004년이후 고속철도 공사에 매진했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는 무조건 고속전철를 깔았다. 2010년 말에는 1000㎞가 넘는 무한(武漢)-광주(廣州)노선이 개통됐고, 2011년 상반기에는 정저우(鄭州)-시안(西安)노선, 상하이-베이징 노선이 각각 열렸다. 여기에 헤이룽장(黑龍江)하얼빈에서 창춘(長春), 선양(瀋陽)까지 연결됐고, 이 라인은 곧 베이징까지 이어진다. 지금 중국 고속철도 길이 1만6000km정도 된다. 전 세계 고속철도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 깔려있다.
 
철도 기술은 ‘많이 깔아본 놈이 장땡’이다. 공사가 많을수록 기술력이 높아지게 되어 있다. 게다가 중국 고속철도는 수천 미터 산을 지나고, 사막을 넘어, 긴 강을 건넌다.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기술이 축적되고 있다. 지금 누구도 중국 고속철을 짝퉁이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멘스나 가와사키 등은 해외 프로젝트 컨소시엄을 구성하기 위해 중국 기업에 손을 내민다. 그들이 싸게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우리가 중국 기업의 혁신을 눈여겨 보는 것은 오히려 지금부터다. 그들이 조성하고 있는 생태계, 그들의 산업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클러스터링 등은 이제 우리 경제를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그게 이번 광군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정한 메시지다.
 
필자가 광군제에서 눈여겨 보는 것은 단지 경이로운 그 판매액 수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알리바바 플렛폼 위에서 얽히고 얽힌 서플라이 체인(공급사슬)이 더 무섭다. 그건 거대한 생태계였다. 상품 포스팅(등록), 주문, 결제, 배송 등으로 이어지는 서플라이 체인(공급사슬)이 만든 전자상거래 환경 말이다. 알리바바는 단지 플랫폼만 제공했을 뿐이다.
 
생태계는 지금 자양분을 빨아들이면 쑥쑥 성장하고 있다. 이번 광군제 행사에 참가한 기업은 약 4만 개에 달한다고 이 회사는 밝히고 있다. 이들이 만든 3만 개 브랜드, 약 600만 종의 상품이 ‘알리바바 생태계’에서 거래됐다. 월마트 품목보다 1.5배 정도 많은 수준이다. 40만 대의 트럭, 비행기 200대가 이들을 실어 날랐다.
 
생태계는 이제 해외로 뻗는다. 약 5000개 해외 브랜드가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 물론 한국도 포함된다. 그 현장 얘기다.
 
지난 토요일 항저우(杭州)로 가는 아시아나 여객기 화물칸에는 큰 뭉치의 포장 화물이 실렸다. 립스틱·매니큐어·머드팩 등 5t 분량의 화장품이었다. 역시 ‘알리바바 생태계’ 속 제품이다. “광군제 행사 때 재고 쇼티지(부족)가 발생한 분량이다. 배송 날짜를 지켜야 했기에 비싸도 어쩔 수 없이 항공 수송을 해야 했다.” 물류업체인 윈윈로지스틱 김근철 사장의 설명이다. 이 회사는 지난 10월 중순 이후 40개 컨테이너 분량의 ‘광군제 특수 상품’을 항저우로 보냈다. 대부분 화장품으로 약 100억원 규모였다. 주문량을 맞추느라 밤샘 작업을 해야 했다.
 
직원 25명의 중소 물류업체에는 ‘대박’이다. ‘알리바바 생태계’는 그렇게 강력한 흡인력으로 한국의 한 중소 물류업체를 끌어들이고 있다. 지금 세계 주요 소비재 생산기업, 물류 서비스회사 등은 어떻게 하면 그 생태계에 끼어들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을 터다.  
 
흡인력의 원천은 중국 내수시장의 구매력, 더 구체적으로는 중산층이다. 글로벌 금융회사 크레디트스위스가 최근 발표한 ‘2015 글로벌 부(富)보고서’는 이를 보여준다. 보고서는 중국의 중산층(5만~50만 달러의 금융·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개인) 수가 1억900만 명에 달해 미국(약 9200만 명)을 추월했다고 분석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2020년 중국 가구의 50% 이상이 고급 중산층 대열에 올라설 것으로 봤다. 이들의 소비력이 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반적인 거시경제 부진 속에서도 소비만은 10% 넘는 성장세를 줄곧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 경제의 체질이 바뀌고 있다. 중국은 제조업 경제를 일으켜 세운 나라다. 13억 인구가 분출하는 ‘노동력(Labor force)’은 중국을 G2의 나라로 만들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 그 노동력은 ‘구매력(Purchasing power)’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20년 중국 노동력이 세계 경제 판도를 바꿨다면 앞으로 20년은 그들의 구매력이 판도를 결정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니컬러스 라디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 소비 중심의 성장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가 지향하는 목표다.
 
우리와 직결된 문제다. 그동안 한·중 경협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짜여왔다. 국내에서 부품을 만들어 중국에서 조립해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다. 그러나 임금이 오르고 중국의 중간재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 패러다임은 깨지고 있다. 그동안 경쟁을 유지해왔던 스마트폰, 심지어 자동차도 밀리는 실정이다. 노동력이 구매력으로 변하고 있는 중국 경제의 속성, 산업 내 움직임을 정확히 읽지 못한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기업별 생태계, 업종별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자기들만의 서플라이 체인을 만들며 장벽을 쌓고 있다. ‘알리바바 생태계’는 그 한 예일 뿐이다. 샤오미(小米)는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샤오미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고, 고속철도 업계에서는 자기 완결형(full-set)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필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중국 내수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여 ‘구매력’ 시대에 맞는 한·중 비즈니스의 새 패러다임을 짜보자는 취지다. 중국 생태계로의 진입 통로를 넓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FTA 비준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국회는 ‘이달 안에 통과되지 않는다면 하루 40억원의 수출 손실을 볼 것’이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중국 경제가 신창타이로 내달리고 있는데도 우리 정치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난을 듣는 이유다.
 
중국은 그들 나름대로의 혁신을 이루며 산업을 바꿔가고 있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로, 수출에서 내수로 전환하는 일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경제에 충격이 올 수 있다. 지금 중국이 겪고 있는 경기 후퇴가 바로 그래서 생긴 현상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거시 지표만을 보고 '중국은 이제 끝인게벼~'라고 돌아서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 경제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한 발 더 들어가 봐야 한다. 알리바바 생태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연구해야 한다. 중국은 어쨌거나 매년 10%이상 규모가 커지고 있는 이웃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중FTA비준안이 국회에 발목잡혀 있고, 중국 거시 경제에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머뭇거리고 있는 바로 이 시간에도 알리바바 생태계는 우리를 외면한 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웃 대감 집 담장 너머의 감나무에 감 익어가듯 말이다.
 
한우덕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
wooodyhan@joongang.co.kr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를 이용해 구독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