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학향기

날 수 없는 배트맨의 슬픔



하늘이 유난히도 맑고 높은 요즈음 새처럼 날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보다 높이 보다 멀리…. 인간은 누구나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 욕망은 비행기와 열기구, 낙하산 등을 만들어냈다. 더 나아가 슈퍼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등 하늘을 날아다니는 영화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배트맨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배트맨은 태생적이거나 후천적으로 얻어진 일종의 초능력을 이용하는 슈퍼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등과 달리 직접 개발한 장비에서 힘을 얻기 때문에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더욱 자극한다. 

실제로 ‘배트맨’이 영화로 제작될 때 제작자들은 최첨단의 기술을 동원했다. 특히 우아하게 펄럭이는 검은 망토와 두꺼운 가면이 어우러져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배트 수트(Bat Suit)는 화학, 전자공학, 동물행동학 등이 결합된 최첨단 과학의 결정체다.그 중 망토의 경우, 낙하산 제작에 쓰이는 나일론 천에 벨벳 느낌이 나도록 가공한 특수 천을 이용했다. 어둠 속에서 배트맨이 망토를 펄럭이며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질 때 망토가 몸의 일부가 돼 움직일 수 있도록 정전기의 원리를 활용한 것. 

정전기는 특정 소재를 마찰하거나 강한 전류를 흘릴 때 양(+)전하와 음(-)전하 중 한 가지만 고루 퍼져 전하가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데 배트맨의 망토는 강하고 고른 정전기를 위해 나일론에 순간적으로 6만 볼트의 전기를 사용해 정전기를 일으킨 뒤 그 위에 고운 입자를 뿌려 들러붙게 했다. 그 결과 부드럽고 얇으면서도 부드러운 벨벳 느낌의 새까만 망토가 완성됐다.



그렇다면 배트맨이 낙하산으로 십분 활용하고 있는 배트맨 망토만 두르면 우리도 멋있는 포즈로 하늘에서 하강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No다. 아무리 최첨단의 특수가공법으로 제작된 배트맨 망토라 해도 그것만으로 하늘을 날 수는 없다. 



배트맨이 탄생한 배경은 과학적 논리성이 상대적으로 허술하다. 과학적인 옷을 입고, 스스로를 설명하고 있지만, 현실성과는 거리가 먼,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아마도 배트맨 망토가 낙하산으로서 제 구실을 다 하려면 겨우 몸을 감싸는 정도의 현재 사이즈보다 몇 배는 커야 하지 않을까? 최첨단의 기술로 만들어진 멋있는 망토를 흠집내기는 아깝지만 안전을 위해 몇 개의 구멍도 뚫어야 할 것 같다. 아울러 필요조건은 더 있다. 실제 낙하산의 원리는 배트맨의 망토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낙하산의 원리는 공기의 저항을 늘려 그만큼 추락속도를 줄이는 데 있다. 낙하산이 커질 수록 공기의 저항이 커지므로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낙하산 크기가 일정 이상 커지면 제어 불능이 되기 때문에 무한정 크게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고 크기가 낙하산의 역할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낙하산에 뚫린 구멍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기는 대류현상이라고 해서 회전식으로 도는데 이 때 위로 올라가는 공기가 낙하산의 구멍을 지나게 함으로써 더 천천히 내려가게 하거나 좌우로 회전하게 만들어 보다 안전하게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낙하산에 구멍이 없다면 낙하산의 막힌 곳으로 공기가 올라가 낙하산은 계속 올라가게 되는데 현재의 배트맨 망토라면 배트맨은 영원히 착지할 수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낙하산의 구멍은 방향전환의 역할도 한다. 낙하산의 뒤쪽 구멍을 열면 거기서 공기가 뿜어져 나와 낙하산이 앞으로 나아간다. 오른쪽 구멍을 막으면 낙하산은 오른쪽으로 돌게 되고, 왼쪽 구멍을 막으면 왼쪽으로 돌게 된다. 즉 구멍을 조절해서 앞으로 나아가거나 좌우로 회전하여 정확한 지점에 내릴 수 있다. 한편 낙하산의 하강속도는 초속 7~9미터 정도이고, 화물낙하산의 경우는 6~10미터 정도다. 낙하산은 최대한 늦은 속도로 착륙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고 적정한 속력을 갖고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트맨이 망토 하나로 낙하산을 대신하려면 망토의 사이즈가 커야 할 뿐 아니라 적당한 곳에 구멍도 몇 개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착륙할 때에는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낙법자세가 필요하다. 



사람이 타는 낙하산은 낙하산 몸체와 보조 낙하산(주 낙하산을 끌어내어 펴지게 하는 유도 낙하산)으로 되어 있는데 낙하산 몸체는 최고 28개의 기다란 천이나 삼각천을 이어서 만든다. 이 천 조각들은 더욱 작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한 곳이 찢어져도 구멍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꿰매져 있으며 각 부분을 이루고 있는 천의 짜임 방향도 낙하산의 강도를 높이는 데 한 몫 한다. 



위풍당당해 보이는 배트맨 망토, 그 망토를 두르고 맑은 하늘, 산들바람 부는 상쾌한 날씨에 가볍게 날아보고 싶지만 아직은 무리일 듯 싶다. 대신 낙하산을 메고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스카이다이빙을 즐겨보면 어떨까? 스카이다이빙은 단순히 떨어지거나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것이다. 혼자서 춤을 추듯 자유로운 동작을 연출하며 하늘을 맨몸으로 나는 짜릿한 쾌감을 만끽한다면 배트맨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글: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네이버 이웃추가 환영합니다 *^^*